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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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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ic 고전

Author Bio 작가 소개

“우옹은 시 읊기 좋아하지 않네. 시는 바로 우옹 스스로 경계할 때 읊지.”(곽신환 옮김, 《도학의 위안》, 서광사, 2024)
송시열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이다. 

1. Life

송시열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1607년에 태어나 1689년에 죽었다. 그는 호란 이후 청나라에 복수해야 한다는 북벌론을 주장하였으며, 효종과 독대하고 몰래 서신을 주고받으며 북벌의 계책을 은밀히 논의하였으나 효종이 갑자기 죽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효종 사후 남명까지 멸망하자 송시열은 조선이 유교 문명을 계승해야 한다는 의식을 바탕으로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 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대명의리론’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또한 송시열은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주나라로 대표되는 유교 문명의 적통 계승 국가가 조선이라고 인식하였다. 조선이 중화의 적통을 계승하였다는 ‘소중화주의’ 또는 ‘조선중화주의’ 사상은 이후 조선 후기의 주된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를 통해 당대 송시열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송시열은 신유학자(성리학자) 주희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과 믿음을 바탕으로 주희와 이이의 사상을 모범으로 삼아 유교 경전들을 해설하고 재편집하기도 하였다. 송시열의 철두철미한 유학적 관점과 사상은 조선 후기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그의 문집 제목이 《송자대전》인 것을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전근대 시기, 성씨 뒤에 ‘자’를 붙이는 것은 위대한 스승에게나 허용되었다. 공자, 맹자, 한비자 등의 경우가 이러한 예이다. 당시 송시열은 공공연히 ‘송자’라고 불리었고, 그로 인하여 그의 문집 제목에도 ‘송자’라는 표현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송시열은 당대 유학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Reference

이덕일,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김영사, 2000.
국립청주박물관 편집부, 《우암 송시열》, 통천문화사, 2007. 
소혜왕후·송시열, 《내훈·계녀서》(명문당, 1997)
유미림 외 옮김, 《빈 망에 달빛 들면》(학고재, 2005)
김선주, 《송자소전》(김&정, 2005.)
《정본 주자어류소분 1-4》(심산, 2010)
김성애 외 옮김, 《송자대전 1》(한국고전번역원, 2021)
김정기 외 옮김, 《송자대전 3》(한국고전번역원, 2021)
정문채 외 옮김, 《송자대전 4》(한국고전번역원, 2021)
양기정·홍기은 옮김, 《송자대전 2》(한국고전번역원, 2022)
박대현 외 옮김, 《송자대전 5》(한국고전번역원, 2022)
김정기 옮김, 《송자대전 6》(한국고전번역원, 2022)
박대현 옮김, 《송자대전 10》(한국고전번역원, 2022)
곽신환 옮김, 《도학의 위안》(서광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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